'맛있는 음식'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눈과 입을 즐겁게 하고 때로는 역사 속 중요한 순간들을 장식했던 '예술적인 음식'을 상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연회로 손꼽히는 **만한전석(滿漢全席)**에 대한 이야기를 아시나요? 이 음식은 단순한 요리가 아닌, 중국의 역사와 문화, 권력의 흥망성쇠를 담고 있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미식(?食)의 의미: '맛'이 아닌 '?'
우리가 흔히 '미식가'라고 하면 맛있는 음식을 유달리 밝히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식욕과 성욕을 관장하는 중추신경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이 두 가지 욕구가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자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밝히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미식가(?食家)**를 한자로 쓸 때, 괄호 안에 어떤 한자가 들어갈까요?
米(쌀 미)
美(아름다울 미)
味(맛 미)
未(아닐 미)
정답은 바로 **美(아름다울 미)**입니다. 중국인들은 '맛 미(味)' 대신 '아름다울 미(美)'를 사용합니다. 이는 음식을 단순히 맛을 넘어선, 시각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로 여기는 그들의 관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로부터 중국 황실의 전속 요리사들은 음식을 한낱 허기를 채우는 방편이 아닌, 예술적 작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섰던 황실 요리사들
음식에 대한 이러한 집착과 탐닉은 때론 거대 제국의 흥망성쇠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론 오랜시간동안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황제의 입맛을 사로잡은 요리사들은 최측근으로서 때론 권력의 최정점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은나라 때의 황실 요리사 **이윤(伊尹)**은 재상의 자리까지 올라 그 이름을 후대에 남겼고, 명나라 때의 간신 **위충현(魏忠賢)**은 도박 빚에 쫓겨 스스로 거세한 후 환관이 되어 궁에 들어갔으나 후엔 황제보다 더 큰 권력을 누렸습니다. 처음엔 허드렛일을 하며 지내던 그가 요리에 재주가 있어 음식으로 황제를 비롯한 권력자들에게 환심을 사고, 아부를 일삼다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 것입니다.
위충현의 권세는 우리의 역사 기록에도 남아있습니다. 1624년(인조 2)에 서장관(書狀官)으로서 명나라에 다녀 온 홍익한이 쓴 사행일록인 『조천항해록(朝天航海錄)』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천하의 권세를 가진 자는 첫째가 태감 위충현이요, 둘째는 객 내저요, 셋째가 황상이다."
— 『조천항해록』 1624년 10월
여기서 '객 내저'는 당시 황제 희종의 유모이자 위충현의 내연녀를 말합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은 위충현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희종이 재위 7년 만에 죽자, 귀향길에 오른 위충현은 자결하고 시체는 다시 능지처참 당하고 맙니다. 나라의 기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환관 정치의 폐해는 명나라를 곧바로 패망의 길로 내몰았지만, 음식과 요리에서만큼은 긍정적인 역할과 함께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쓰미 요이치가 쓴 『혁명의 맛』에는 "중국 요리의 역사는 어떤 면에서 환관 요리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이는 환관이 지닌 남다른 욕망에서 비롯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환관들로 하여금 권력과 부를 향한 욕망과 미식의 쾌락에 탐닉하게 부추긴 것은 "거세로 잃어버린 남성 기능에 대한 콤플렉스와 보상 심리"였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만한전석의 탄생과 화려함의 극치
그렇다면 중국 역사에서 손꼽히는 대표적인 미식가(美食家)는 누구일까요? 바로 **만한전석(滿漢全席)**으로 유명한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만한전석은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때 처음 등장하고 건륭제가 완성하여 화려함과 사치스러움, 미식의 끝판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건륭제가 1784년 섣달그믐날 신하들을 위해 베푼 만찬의 재료는 아직도 기록으로 남아 전해집니다.
● 육류: 돼지고기 65근, 오리 4마리, 닭 10마리, 돼지 허벅다리 3개, 멧돼지 25근, 거위 5마리, 양고기 20근, 사슴고기 15근, 야생
닭 6마리 등 육류만 300~400근에 달했습니다.
● 진귀한 식재료: 여기에 제비집, 사슴 아기집, 사슴고기 포, 곰 발바닥, 백조, 두꺼비 등 들짐승과 날짐승을 포함해 수십 가지가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흥안령(만주 서북부에 있는 구릉형 산맥)에서 잡은 수컷 호랑이의 고환으로 만든 청탕호단(淸湯虎丹),
사불상(사슴과의 동물)의 머리로 만든 일품기린면, 사슴 눈알로 만든 명월조금봉, 뱀의 간은 용의 간(龍肝), 닭의 골은 봉황의
골수라 불리며 별미로 꼽혔습니다.
● 충격적인 요리: 이 밖에도 살아있는 원숭이 골, 잉어 꼬리 요리, 독수리 구이, 사슴 입술로 만든 녹순(鹿脣)등 상상하기 어려운
진귀한 재료들이 사용되었습니다. 맛이 궁금하다기보다는 '진기명기 세상에 이런 일이'를 보는 듯한 충격과 경외심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만한전석에 쓰였던 식기는 현재 유일하게 공자 집안에 남아있으며, 총 404개에 196가지의 음식을 담아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건륭제가 공자의 72대손에게 시집 보내며 혼수품으로 넣어 준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서태후 시대의 만한전석: 사치의 절정
만한전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청나라 말기의 독재 권력자 서태후시대에 와서 더욱더 사치스럽고 호화로워지며, 지방 호족들에게까지 유행처럼 번져나갔습니다. 만한전석은 황제를 위한 음식이지만 서태후는 황제가 아닌 자신만이 먹을 수 있게 했습니다.
상어 지느러미 같은 요리는 전통적으로 먹지 않았던 음식이지만 서태후가 즐겨 먹기 시작하면서 발전했습니다. 서태후가 식사를 할 때면 황제와 황후가 항상 옆에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고 합니다.
서태후가 만주족의 성지인 봉천(지금의 선양)에 갈 때의 당시 만한전석을 만들기 위해 준비한 품목들을 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화로 50개를 실은 마차 4개
● 100명이 넘는 요리사
● 100종류의 요리를 바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각종 식자재
● 디저트와 간식을 먹을 수 있는 100종류의 재료 등
만한전석의 정치적 의미: 만주족과 한족의 융합
만한전석은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변방의 오랑캐였던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며, 절대다수였던 한족의 음식 문화를 융합하여 만든 것입니다. 원래 여진족의 후예인 만주족은 소수민족으로서, 명나라와 같은 거대 제국을 다스릴 준비도 능력도 안 되는 나라였습니다.
명나라는 위충현과 같은 환관들의 득세와 100여 년 가까이 누적된 사회 질서 붕괴, 이자성의 난과 같은 농민 반란 등으로 무너졌습니다. 만주족은 천운으로 얻게 된 거대 제국을 다스리며 절대다수인 한족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제일 먼저 받아들이고 융합하려 했던 것이 바로 음식 문화였습니다.
만한전석은 만주족 음식 54개, 한족 음식 54개로 정확히 반반씩 최소 108가지의 음식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만한전석은 후대로 내려오며 환관들의 결탁으로 인한 식자재의 매점매석, 지방 토호 세력들 간의 세력과 부의 과시로 이용되며 또다시 망국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물론 서태후의 끝없는 사치와 향락, 철저한 쇄국 정책 등도 큰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아직도 한족의 비율이 92%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당시 소수민족이었던 만주족(말갈족 혹은 여진족)에게 나라를 빼앗긴 것이 그들은 무척 억울했을 것입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협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허구한 날 "반청복명(反淸復明, 청을 몰아내고 명을 부활시킨다)"이라고 떠들어대며 싸움박질하는 스토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정도입니다.
현대에서 만한전석을 맛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만한전석을 먹어볼 수는 없을까요? 다행히도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1/3 이하로 가짓수가 대폭 줄어들긴 했지만, 홍콩이나 싱가포르에는 만한전석을 먹기 위한 계모임도 있다고 합니다. 1인당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의 비용에 2주 정도의 휴가를 내고 먹는다고 하니, 그 희소성과 가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만한전석을 맛볼 수 있는 곳은 자금성 북서쪽에 위치한 베이하이 공원 내 **팡산식당(仿膳饭庄)**입니다. 이곳에서는 전통적인 만한전석의 일부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현하여 다양한 요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만한전석에 대한 이야기가 또 길어졌네요.
단순한 음식을 넘어 중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권력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만한전석은 분명 매력적인 미식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우리들의 오감이 만족할 만한 기회는 언제쯤 찾아올까요?
어쩌면 굳이 황제의 식탁이 아니어도, 오늘 저녁 식탁에서 나만의 '만한전석'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등심이 들어간 짜파게티가 아주 맛있다던데.....) 어제 점심때 누가 그러더군요.
굳이 안 먹어도 알 수 있는 맛?